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경주를 보고싶었다. 결국 찾아가서 보게 된 경주는 그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내가 생각한 경주의 주제는 『무진기행』의 주제와 같았다.
1학기에 들었던 문학수업에서 무진기행에 대하여 탐구한 적이 있었다. 문학을 고등학교 수업시간처럼 해석본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 작품 그대로에 보이는 외적인 면만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스스로 알아보는 내가 직접 생각하는 해석하는 문학인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가장 내가 크게 깨달은 점은
작가는 절대 의미없는 요소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각각의 요소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으며 그 유기적인 관계에서 작품의 주제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를 스스로 문학수업에서 느껴가며 체득한지라, 이런 경주와 요소 하나하나에 눈에 쉽게 보이기도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의미를 담고 같은 유기적으로 매우 잘짜여진 영화를 보면 흥미를 가지고 재미있다고 여길 수 밖에 없다.
처음 무진기행을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저 작품선정에서 무진기행이라는 책을 읽게되어 의무감으로 쭉쭉 읽어내려갔다. 그러다보니 완전히 모두를 이해하지는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한 두 부분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깊게 탐구를 하는 과정에서 요소의 의미를 파악하면서 작품을 해석하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인들이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과를 했을 때 신민아가 했던 대사가 생각난다.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함께 더 잘 살아나가는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했다. 이런 스쳐지나가는 대사 하나하나에도 전체적인 작품의 주제와 연관이 있다.
중국인 아내를 두고있고, 자살사건에 골치가 아픈 최현이 경주로 내려가 1박 2일의 꿈같은 시간을 보낸 것은 무진에 내려간 윤희중이 보내는 시간과 매우 겹쳐보였다.
일단, 경주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경주의 분위기를 매우 잘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한가하고, 평화로우며 조용하다. 분위기있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간관계가 매우 좁다. 인간관계가 매우 좁다는 것은 사실 공윤희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 매일 보던사람과 비슷한 이야기, 비슷한 일을 하던 중에 최현을 만난다는 것은 일상에서 전혀 새로운 인간관계의 확장을 얘기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최현과의 만남은 공윤희의 일상과 인생에서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지한다. 최현이 원래 살던 중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공윤희에게 최현은 큰 존재일 것이다. 오히려 최현에게 일탈의 대상이었던 경주에서 만난 여자 다시 볼 일 없는 인생에서 관련 없는 여자인 공윤희가 훨씬 작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최현 스스로도 이를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최현이 중국인 아내의 음성을 들으며 경주를 바라보며 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돌아가서 공윤희의 의미를 인생에서 거의 지워버릴만큼 축소시킬것인가, 아니면 계속 머무를것인가. 무진기행에서 윤희중은 아내의 전보를 받고는 곧바로 하인숙에게 편지를 쓰지만 곧 찢어버리곤 도시로 돌아간다. 경주에서 최현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이를 영화에서는 밝히고 있지 않다. 그리고 경주의 전경을 바라보는 것으로 최현의 시선은 끝난다. 그러나 최현은 아마 윤희중처럼 중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을 것 같다.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영화의 방향이 실제 감독이 생각한 해석이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주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의 관점에서 가장 관심있는 방향으로 이 영화를 해석하며 보았고, 경주를 굉장히 완성도 있는 영화라고 받아들였다. 어떤 의견들은 경주를 분위기만으로 모든것을 끌고 나가려고하는 아무 내용없는 찝찝한 영화라고 한다. 그러나 또한 결말을 보고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모든 작품의 결말에는 제작자가 의도한 완결성이 있고 이는 제작자가 생각하는 완전한 완결된 결말이라는 원리를 생각하며 제작자의 결말의 의도를 받아들이려고했다. 그 순간에 비로소 이 영화는 나의 내면에서 완전한 영화로 자리잡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단순히 한마디로 정의하는 교훈으로 찾기는 힘들다.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사실 무진기행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을 했지만 아직도 무진기행의 주제를 한마디로 말끔하게 정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이대로 내버려 두려고 한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야기들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주제를 물을때 나는 이렇게 이 영화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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